백인우월주의가 발전하고 전파된 과정

백인우월주의가 발전하고 전파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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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위 서울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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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위 로로피아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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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위 덕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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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위 역마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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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위 봉구스박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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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위 도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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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위 내좀살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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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우월주의가 발전하고 전파된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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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 대부분에게 백인이라는 개념은 익숙함. 하지만 역사적으로 보았을때 이 백인이란 개념 자체부터가 상당히 최근의 것이며 백인의 범주 또한 지역마다 달랐을뿐 아니라 심지어 미국과 서유럽에서조차 불분명했음.
 
역사적 기록에서 백인을 통칭할때 가장 쉽게 떠올리는 서북유럽 백인들 마저도 백인이란 개념 자체를 인식이 없었고 이는 기껏해야 고작 지난 수백년에 걸쳐 정립된 개념임.
 
그야 당연한게 서유럽내에서는 큰 외관적 차이도 없었을뿐더러 전근대 유럽인들이 세계를 바라보고 타자를 구분하며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반은 인종이 아닌 종교, 관습, 신분등이었기 때문.
 
그렇기에 우리가 백인과 인종 개념이 어떻게 유럽과 미국 더 나아가 세계 전체로 퍼졌는지 알아볼려면 유럽이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하던 약 500년전으로 돌아가야함.
 
 
1. 인종 개념의 기원
 

 
 
대항해시대 이전 유럽인들은 자신을 '백인' 이란 분류라고 생각한적이 없음. 그도 그럴게 다 자기랑 비슷하게 생기고 피부색도 하얀데다 자신들의 정체성은 오히려같은 언어, 관습, 종교를 가졌는지 여부.
 
특히 많은 게르만과 슬라브계 국가들이 본격적으로 부족 연맹에서 벗어나 국가로 진입하는 시점에서는 기독교인인지 아닌지가 꽤나 중요해서 같은 게르만어군이라 해도 기독교화한 프랑크 왕국이 색슨족을 철저히 탄압하고 학살했던게 대표적임.
 
그리고 이 기독교 마저도 사실 이익 앞에서 무효화되는 경우가 많았음. 현대인들이 종교적 열정으로만 가득할거라고 생각한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과정에서 포르투갈과 전쟁한 국가는 이슬람 그 이상으로 기독교인 레온이나 카스티야등의 왕국이었음.
 

 
 
하여간 백인이란 정체성으로 뭉치지도 않았고 백인이라는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며 한때 러시아나 폴란드계 또는 아일랜드계등은 백인에서 제외되야 하냐란 얘기도 함. 즉 이건 인류 역사의 길이로 보았을때 꽤 최근의 사회-문화적이자 유동적인 개념이란거.
 
이 탄생한 시점과 장소를 특정하자면 아이러니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유럽 대륙이 아님. 대체적으로 1500년대 대항해 시대 선두주자인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경영하던 캐리비안 해의 섬들과 브라질. 즉 아메리카 지역.
 
여기서 포르투갈인과 스페인 농장주들은 원주민과 흑인을 노동력으로 써먹으면서 그들과 다르다는걸 인식했고 이때부터 농장주들은 피부가 하얀 자신들과 타자를 구분하기 시작했음. '피부가 진한 이교도들은 노동에 적합' 이런 식으로.
 

 
 
그리고 여기에 플랜테이션이 시작하면서 이런 대농장들의 서열은 1. 유럽인 (지배인), 2. 흑인 (노예), 3. 원주민 (남성은 노동력 or 여성은 첩) 이런식으로 구분이 되었고. 다시 말해 필요성과 권력에 따른 서열이 인종주의의 근원.
 
더해 이후 참가한 후발주자인 영국 또한 캐리비안과 아메리카 지역으로 건너옴. 그들 또한 이 포르투갈과 스페인 농장주들의 플랜테이션 모델과 인종 구분을 그대로 수입. 정확히 말하자면 네덜란드가 브라질을 일시적으로 점령했을때 습득한 포르투갈 모델.
 

 
 
그런데 여기서 영국계 식민지들은 여기서 더 나아갔음. 이런 농장에서 노동을 위한 서열을 아예 명문화했을뿐 아니라, 피부색에 따른 법적 지위의 차별과 유색인종과의 통혼을 금지하고 노예 지위는 인종에 따라 그 자식도 세습되는걸로.
 
여기서 버지니아 주의 영국계 엘리트들은 노예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흑인과 노예에 대한 정의와 함께 유색인의 정의 또한 확실히 했는데1705년 버지니아 노예법1. 백인 2. 흑인 3. 혼혈 이라고 현대까지 내려오는 개념의 원형임.  이게 본격적인 인종주의의 시작이었고 이는 곧 영국으로 건너가며 또 다른 변화를 맞음.
 
 
 
2. 유럽으로 수입
 

[ 칼 폰 린네 ]
 
이렇게 아메리카에서 탄생한 인종과 백인의 개념은 식민지 엘리트들과 상인들에 의해 영국 본토로 수입되기 시작했고 이는 얼마 안가 유럽대륙으로 퍼져나감.
 
당시 유럽의 중심이었던 프랑스의 의사였던 프랑수아 베니에르는 지역과 얼굴 외양에 따른 '인종' 개념을 제시했음. 그리고 프랑스에서 고안된 개념은 유럽의 중심이었던만큼 빠르게 각지에 퍼져나갔고.
 
여기서 더 발전 시킨게 스웨덴의 식물학자인 칼 폰 린네 또는 카를 린나이우스인데 인종에 의한 계급 구조 그 자체를 주창하진 않았지만 유럽인,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아메리카 원주민등 개념을 설파하였고 인종에 따른 특성과 비하적 인식을 언급.
 

[ 데이비드 흄 ]
 
더해 스코틀랜드의 경제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은 이 인종분류에서 유럽인이 우월하며 아프리카인들은 열등하다했는데, 의외겠지만 계몽주의자를 포함해 많은 유럽 지식인들이 인종적 편견을 보여줌. 
 
루소만해도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열등한 문명이자 유럽인들만이 보편 의지를 가진 집단이라고 간주했고볼테르는 아프리카인들은 열등한 민족이며 유럽인들만이 이성을 담지한 유일한 인종이라 보았음.
 
여기에 몽테스키외 또한 아프리카인들은 기후에 근거해 아프리카인들은 열대지방에서 종노릇하기 적합하다고 주장했음. 이 인종개념을 영구화 시키는데 공을 세운 사람은 칸트로칸트는 인종 서열에서 유럽인이 최정상에 군림하며 유색인종들은 실질적 이성 사고가 불가능한 열등집단이라 지칭.
 

 
그리고 이런 개념이 미국으로 역수입되기도 해 계몽주의에 흠뻑 취해있던 건국의 아버지인 토머스 제퍼슨이 대표적으로 백인 공화국과 백인 농민들에 의해 이루어진 이상적 백인 공화국을 추구했음.
 
아직까지도 현대인들이 많이 혼동을 일으키는 부분이 ' 왜 보편주의와 계몽주의를 주장하고 노예해방을 주장했던 제퍼슨이 흑인과 백인은 절대 평화 공존할수 없다 ' 고 했냐는 부분인데
 
간단함. 제퍼슨이 구상한 공화국의 일원 구성은 백인을 위한것이었기 때문으로 당시 역사적 맥락을 알아야만 이해가 가능함. 
 

 
 
사실 제퍼슨만 그랬던게 아니라 헌법의 아버지라는 매디슨등도 비슷한 인종 관점을 보유했고. 아이러니는 대척점이자 중앙정부를 선호했던 해밀턴이 흑인에 대한 납치 및 흑인 아이들을 보호하는 법 제정을 주장했던 뉴욕 노예 해방회의 창립 멤버라는것.
 
하여간 이렇게 형태를 사실상 갖춰가며 발전하던 백인과 인종에 대한 개념과 이론은 근대에 와서 본격적으로 완전체로 거듭나기 시작함. 과학적 인종주의란 이름으로. 
 
 
 
3. 과학적 인종주의
 

[ 조르주 퀴비에 ]
 
18세기 말엽에 독일의 요한 프리드리히 블루멘바흐가 현대 백인이 속하는 인종인 코카소이드 개념을 정립하고 프랑스 동물학자인 조르주 퀴비에가 화석 기반 연구를 통해 동물끼리의 서열을 나누듯 인종끼리도 서열이 있다고 주장.
 
그리고 이런 블루멘바흐와 퀴비에의 연구는 과학적 인종주의의 발판이 되었고, 이런것들이 나타난 이후 과학적 인종주의의 본격적인 아버지라 불릴만한 인물이 나타는데 프랑스의 고비노임.
 
역사에 관심없는 아리아인 이라는걸 많이 들어보았을거임. 히틀러와 나치에 의해 하도 많이 알려지다보니까. 근데 아리아인을 인종적 개념으로 본격 변이시켜 퍼뜨리기 시작한게 고비노.
 

[ 조레즈 아르튀르 고비노 ]
 
고비노는 아리아인의 우월성을 주장했을뿐 아니라 문명의 흥망성쇠는 인종의 순수성에서 기반하며 인종적 오염은 곧 문명의 쇠락을 가져오며 이 인종 서열은 불변하고 세습되며 인종은 곧 생물학 + 역사학 + 운명론의 결합체라함.
 
나치랑 비슷하게 들리면 맞음. 프랑스와 유럽의 인류학자, 영국의 제국주의자들 그리고 미국의 백인우월주의자들까지 당시 서양의 문화적 중심이던 프랑스의 이론을 근거로 인종 분리를 정당화하고 짐 크로우법등을 제정했고 나치도 그대로 베꼈으니까.
 
그런데 여기서 의아한점이 있을텐데 대중인식에서의 아리아인은 금발백인인데 고비노 그 자신부터가 전형적인 노르딕 백인의 외양과는 거리가 멀었을뿐 아니라, 프랑스인들도 아님. 그렇다면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인종의 불평등]
 
일단 이걸 알려면고비노의 출신을 알아야됨. 고비노는 프랑스의 백작 가문 집안으로 프랑스 혁명 그리고 산업혁명 이후 귀족들보다 더 강력해진 부르주아등에 의해 밀려난 사람임.
 
다시 말해 자신이 타고난 고귀한 귀족 혈통이 자기보다 천한 출신들에 의해 파괴되고 밀려나서 프랑스가 이전에 비해 쇠퇴하고 있다는 일종의 원망과 상실감. 그러다가 19세기에 산스크리트어 및 인도-유럽어족을 발견해 '고귀한 사람' 이라는 Aryan 이란 용어를 학습.
 
 아리아인은 고비노 자신의 선조와 같은 그런 고귀한 인도-유럽의 전사 귀족 계층을 의미하는것으로 귀족들을 사회의 정점에서 몰아낸 자본가와 같은 하류 계층들이랑 섞이거나 밀려나면 그런 문명 즉 프랑스는 망한다는거에 대한비유로서 아리아인을 언급한거임.
 
[ 바세르 드 라푸즈 ]
 
이 아리안 개념을 실체화 한것은 폴 피에르 브로카임. 그는 외과의사로 두개골 계측법등을 도입해 뇌의 용량에 따른 인종간의 서열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한 과학적인 인종우열등을 주장. 그에 따라 영국 인류학, 미국과 독일의 인종학, 초기 IQ 이론, 우생학등에 영향을 끼쳤고.
 
그리고 이 모든걸 종합해 또 다른 프랑스 귀족 가문 출신이자 인종학자인 바세르 드 라푸즈는 한층 더 발전시킴. 우월 인종은 선별되어야하며, 인종에 의해 우월성과 열등성이 결정난다고 주장.
 
특히 그는 스웨덴 출신이었던 레티우스가 내세운 우수한 인종이라는 금발 벽안 노르딕에 집착 했고, 열등 인종은 모두 처분되어야할뿐 아니라 아리아인들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함. 이는 바로 또 인종주의의 또다른 갈래인 우생학과 노르딕주의 그에 따른 나치즘이 됨.
 
 
 
4. 우생학과 나치즘
 
 

[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
 
이런 라푸즈의 주장은 프랑스에선 보통 극우등 일부에서 열광했음. 프랑스는 라틴 + 켈트 + 게르만등 여러 종족이 합쳤기에 시민적 민족주의를 내세운만큼 사회 전체에서 열광하긴 애매했음.
 
그렇기에 사실 라푸즈의 이론은 동일 집단이 우선되는 종족적 민족주의에 기반해 국가를 형성한 독일에서 인기를 더 끌었음. 우리가 생각하는 아리아인과 노르딕주의를 대중화한 인물은 19세기의 근원이란 책을 낸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
 
이름에서 나타나지만 그는 아이러니하게 영국 태생이지만 프랑스와 프랑스어권 스위스인 제네바등에서 학업을 이수했고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고비노에 직접적 영향을 그리고 라푸즈가 이끌던 학풍에 간접적 영향을 받음.
 

[ 안데스 레티우스 ]
 
여기에 영국의 스펜서가 주장한 사회진화론까지 조합하면서 고비뉴가 주장하던 기존 귀족으로서 아리아인 대신레티우스와 라푸즈가 주장하던 노르딕 즉 금발 벽안 백인으로서의 아리아인 개념을 유행시킴.
 
이때부터 우리가 생각하는 아리아인의 개념이 사실상 생기게 되고 이는 당연히 게르만계 국가들이 듣기 좋은 주장이었기 때문에 독일등에 즉각 수입되었으며 체임벌린 그 자신도 독일로 건너가 나치당까지 가입함.
 

[ 한스 군터 ]
 
그리고 이런 라푸즈와 체임벌린의 이론은 독일의 푈키셔 내셔널리스트 (원민족주의자)들과 초기 나치의 인종학자들에 의해 베껴졌음은 물론독일 우생학을 주도하던 인물인 한스 군터부터가 라푸즈에 영향을 받았음.
 
게다가 독일은 이런 필요성을 강력히 느낀게, 게르만어군 국가들이 듣기 좋은 주장인것도 있지만 1870년대 이전까지 통일 국가가 아니었기에 영국과 프랑스등 기존 열강에 비해 어느정도의 열등감이 존재했음.
 
그런데 이런 독일 조상 = 노르딕 = 아리안 (최우수 인종) 이란 이론은 그런 영국과 프랑스에게 밀리고 심지어 독일이 유린당했던 역사적 열등감을 해소해줄수 있는 좋은 근거가 되었고.
 

[ 1900년대 인종 지도 ]
 
왜냐면설령 국력에서 옛날에 밀렸지만 '독일인은 노르딕이라 타고난거 자체가 우월하다' 라는 이론으로 자긍심을 고취시킬수 있었거든. 그런데 우생학의 대가인 한스 군터부터 체임벌린까지 독일인 = 순혈 노르딕이 아니란걸 인지했음.
 
과학적 인종주의의 아버지인 고비노가 중시한게 바로 인종적 순수성과 인종 오염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거고 이 틀은 아리안이 노르딕으로 바뀐거 말고 그대로 내려온만큼 이는 사실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실제로 체임벌린은 '순수성이란 이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라고 했고 나치의 우생학을 이끌던 군터조차 ' 독일인의 유전자는 노르딕 + 지중해 + 남슬라브 잡종 ' 이라고 자조하듯이 얘기했으며 또다른 우생학의 거두인 프리츠 렌즈 또한 순수한 노르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얘기.
 

[ 유럽의 전쟁터였던 독일 ]
 
그 뿐 아니라 나치 SS부터 '독일인들에게 순수한 노르딕 혈통이 남아있지 않더라도 그 농도는 짙다 ' 정도로 일축 했으며 히틀러 그 자신조차 엄밀한 의미의 순혈 노르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음. 
 
그도 그럴게 독일은 유럽의 정중앙으로 라틴계 국가부터 슬라브 국가까지 온갖 국가들이 와서 전쟁 및 교류를 하던 동네로 당연히'순혈' 이 있기가 힘들거든. 그래서 스웨덴등 금발 노르딕 순혈이 유지되던 스칸디나비아에 집착.
 
그런데 이건 좀 웃긴일이라 할 수 있는게 라푸즈의 노르딕 집착에 영향을 주었던 레티우스 자체가 스웨덴 출신이라 그냥 자기 집단의 형질 ( 금발 벽안 ) 을 가진 애들이 우월하다 한거임. 일본애들이 야마토정신 주장하듯.
 

[ 스웨덴 백인우월주의 집단인 노르딕 저항 운동 ]
 
애초에 스웨덴용 국뽕으로 주장한거를 전혀 다른 역사적 발전과정을 거친 독일에 적용하다가 안되니까 스칸디나비아에 집착하게된 우스꽝스러운 꼴이 된 것.
 
그 이후로 나치가 패배한 후 우생학은 사실상 폐기되었고 현재 2025년까지 백인우월주의 레토릭이 본문의 내용과 유사하다는점에서 알겠지만 기존 19~20세기 개념을 21세기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거. 훨씬 더 조잡한 버전으로.
 
그러면 여기서 또 하나 의문이 생기는 부분은 대체 왜 노르딕은 커녕 백인조차 아닌 비서구 국가들 또한 인종주의와 백인 개념에 대해서 수용하게 된걸까 하면 이것도 결국 권력 상하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
 
 
5. 비서구 지역 전파
 

[ 라틴 아메리카 계급도 ]
 
본문의 첫 문단에서 언급했듯이 대항해시대의 선발주자로 나선건 스페인과 포르투갈이었고 대규모 식민지도 얘들이 먼저 주도했음. 그렇기에 유럽인과 본격적으로 접촉한 비서구 지역은 아메리카가 되고.
 
일단 스페인 제국은 출신에 따라 계급을 나누긴 했는데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단순 피부색의 그것이랑은 좀 달랐음.  스페인 본토에서 관리인등으로 온 본토 스페인 출신인 페닌술라르가 정점.
 
그리고 그 다음이 정착한 이전 페닌술라르 부모가 식민지에서 낳은 스페인 계통 백인인 크리오요 그다음이 백인과 원주민과의 혼혈인 메스티조와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
 

[ 라틴 아메리카 독립을 주도한 시몬 볼리바르 ]
 
여기에 원주민과 흑인의 혼혈인 잠보스, 원주민, 흑인 이렇게 나뉘었지만 이는 인종 우월성을 내세우는 그런쪽 보다는 행정적인 구분에 가까웠음.
 
물론 이는 사회 계층 구조를 법적으로 명시하는 만큼 불만이 많았음. 오히려 유색인종들이나 혼혈보다도 스페인 백인 2세대, 3세대인 크리오요들이 특히 불만이 많았지.
 
왜냐면 생긴것도, 혈통도 같은데 왜 고작 식민지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최상위 대접 안해주냐는 의미에서. 그렇기에 나중에 스페인으로부터의 라틴 아메리카 독립도 이런 크리오요들이 주도했음.
 

[ 브라질의 백인화를 상징하는 그림으로 흑인 노파의 딸인 혼혈 여성이 백인 남성과 아이를 낳을시 백인 아이가 탄생함을 시사 ]
 
그렇기에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아메리카 원주민 또는 인디언들은 크게 백인이나 스페인 사람들이 특히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음. 외부에서 온 우리 땅 가져간 침략자란 인식이였지.
 
왜냐면 애초에 관리를 위한 행정적 구분으로 시작했고 같은 스페인계 끼리도 차별이 있었을 정도로 인종 그 자체에 집착하는게 아니었을뿐 아니라 이걸 모든 인구에 내재화할 정도로 행정력도 없었기 때문.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백인 개념을 수용한건 크리오요들이 주도한 독립 이후 백인화를 통한 문명화 정책을 국시로 내걸고 대규모 백인 이민을 받아들였을뿐 아니라 교육과 선전을 통해 이런 백인의 우월성과 인종구분을 끊임없이 주입하면서 발생한걸로 무려 19세기 후반.
 

[ 1776년도의 세계 ]
 
그리고 다른 비서구 지역들도 거의 시기가 비슷함. 왜냐면 19세기 이전에 이미 저런 개념이나 이론은 미국과 유럽지역에서 다 나오고 있었다한들,난데 없이 유색인종들에게 너는 태생적으로 열등하다 하는걸 받아들이라하면 받아들일리가 없으니까.
 
예를들어 현대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슬람이 세계에서 제일 우월하고 세계를 지배해야한다 하지만 비이슬람권에선 헛소리로 취급하고 중국 또한 중화사상에 입각해 중화문명이 최고로 우월하다 하지만 신경을 안쓰듯.
 
왜냐면 그걸 입증할 물질적 기반 즉 그만한 무력 투사나 경제적 번영이나 문화적 성과가 결여되어있기 때문임. 자기집단이 타 집단보다 뛰어나다는거야 그 집단내에서야 통하겠지만타 집단에서 받아들여야 될 이유는 되지 않으니.
 

[ 1828-1829년 러시아 제국에 의해 수도 코앞까지 함락당한 오스만 제국 ]
 
그런데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주의가 비서구 지역에서 널리 퍼질수 있었던건 저런 주장이 먹혀들어갈 정도로 군사력의 격차, 경제력의 격차, 기술력의 격차에 더해 문화 매체의 질이나 양에서의 격차가 존재했기 때문.
 
그렇기에 19세기 초반까지만해도 오스만 제국만 해도 자신들이 밀린다는 위기감은 있었지만, 자신들이 유럽이나 서구에 비해서 열등하다라고 자책한 기록이나 흔적은 크게 없음.
 
그러다가 서서히 19세기 중반부터 급증하기 시작하는데, 첫번째로 러시아에게 연속으로 패배한 군사적 굴욕, 두번째로 영국에 의한 경제적 지배와 무역로 장악에 의한 무기력함.
 

 
[ 서구화한 오스만 엘리트 ]
 
그리고 이런 오스만이 유럽세력에 밀리는 상황을 설명할수 있는것처럼 '보이던게'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과 미국에 퍼져나가던 고비노와 라푸즈등이 내세우던 과학적 인종주의였고 그래서서구화는 곧 문명화로 인식하게 됨.
 
그래서 당시 유럽의 중심 언어이던 프랑스어와 고급 문화인 프랑스 문화가 이스탄불등에 유행하게 되고 이런 현상은 19세기 들어 그 이전 서구가 비서구 지역 대비 앞서나가던걸 넘어 압도적인 힘의 격차를 보이면서 오스만 이외 비서구 지역에서도 나타남.
 

 
[ 1895년 유럽 제국들 ]
 
예를 들어 이집트와 아프리카 지역에서도 서구와의 충돌 내지 교류 -> 압도적 군사 & 경제적 격차의 연속 경험 -> 그걸 설명할 이론으로 서구의 이론과 사상을 받아들이는식. 실제로 19세기 유럽 문명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문명이었던만큼 이는 받아들여지기 쉬웠음.
 
그런식으로 인도도 영국의 식민지화가 가속화되면서 수용하고, 동남아도 마찬가지로 영국, 프랑스등 식민지가 되며 받아들임. 동아시아도 아편전쟁과 의화단 사건등을 통해 중국이 반식민지화 되면서 서구화와 함께 서구의 인종이나 문명 서열도 그대로 수입함.
 

[ 인도 인구 문해율 ]
 
다만 조금 한계는 있었던게 이 당시 비서구 지역 대부분 아니 서구의 서민층까지도 사실 서구의 영화등 대중문화나 학술 이론을 접하기 힘들었음. 문맹률도 높은데다 그만한 경제적 여유가 안되었거든.
 
그래서 분명히 엘리트에는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일반 평범한 사람들이 모두 심리적으로 내재화하는 수준은 아니었음. 이게 퍼지게 된건 영상 매체의 발달과 함께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를 합친것보다 거대했던 미국의 등장.
 

[ 21세기 초 전세계 영화시장을 그야말로 쓸어담았던 미국 영화 ]
 
미국은 라디오와 TV 가 퍼지던 시점에 대영제국의 전성기 그 이상의 경제력이나 군사력 그리고 더 나아가 문화력을 보여줬기 때문에. 이는 상당히 대단한게 대영제국이 정점이던 시절조차 프랑스 문화가 강했음.
 
게다가, 프랑스 문화는 엘리트 1~2%에 국한되었다면 미국 문화는 상업적 대중문화의 본진 답게 엘리트부터 대중 전체에 깊숙히 퍼졌음. 
 
그렇기에 백인 사회이자 부유한 미국의 주류인 백인에 대한 인식이나 인종 개념 또한 무의식적으로 세계 대중들에게도 퍼지게 되고 이게 지금 현대까지 이어진거고.
 
 

[ 프랑스군의 네덜란드 침공 ]
 
여기까지가 인종주의가 어떻게 퍼졌는지 대략적인 흐름인데 서구나 유럽이나 너무 광범위한 범주를 사용했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해 피지배국이었던 동유럽과 중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은 말할것도 없고 심지어 스웨덴등 서북유럽의 상당수조차 비서구의 백인 인식에 영향이 거의 없음.
 
열강인 오스트리아 헝가리조차 사실 크게 해외진출은 못했고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에서조차 고전을 했을 정도이며독일은 역량은 있었지만 너무 후발 주자였기에 소규모로 점령했고 그마저도 일시적이었음. 
 
네덜란드는경상도보다 좀 더 큰 체급 수준으로 엄청난 활약과 확장을 했으나 말 그대로 체급 ' 치고 ' 잘한편으로 결국 그 체급의 한계를 못뛰어넘고 영국 및 프랑스에 주도권을 뺏겼으며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19세기에 이미 열강에서 탈락.
 
 

[ 식민열강들이 세계에서 전투 벌인 지역들: 영국이 압도적으로 많고 프랑스가 그 다음 ]
 
사실19~20세기 유럽 식민지의 80~85% 이상이 영국, 프랑스등의 식민지라는거에서 알 수 있겠지만 권력 상하 관계에서 비롯된 비서구 엘리트와 지식인의 인종 관념은 대부분이 영국 그리고 영국보단 덜하지만 프랑스의 영향이고.
 
마찬가지로 비서구 대중들이 인식하고 느끼는 백인 인식은 미국의 영향이 압도적이지. 그도 그럴게 미국이 전 세계 영화 시장의 60~70% 이상을 장악했을 정도로 미국의 문화 영향력이 세계를 지배했으니까. 
 
즉 이렇게 1500~1600년대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농장주들이 만든 인종적 개념이 영국의 북미 식민지로 그리고 다시 유럽으로 퍼져나가 영국의 산업혁명으로 벌인 압도적 격차로 비서구 엘리트들 그 다음 미국의 패권으로 전세계 대중들에게마저 퍼지게 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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